재무포럼 제13호

Issues & Opinions

쟁점 : 은행의 민영화 바람직한가?

 
쟁점선정 배경

 최근 은행법에 대한 개선방안이 이슈화되면서 은행이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은행주에 대한 보유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산업자본의 은행지배에 따른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은행의 소유 및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지금껏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지만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보았습니다.
 
 
 
목  차

 
 
김영진(서울대 교수)

은행민영화의 과제
 
 은행법 개정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그 논란의 골자는 산업자본의 은행소유지분 한도와 대주주에 대한 여신공여한도의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금융산업의 재정비를 통하여 과거 우리 경제가 안고 있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금융구조조정이 과감하게 추진되었고 이러한 과정의 마무리 작업으로 은행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 특히 은행산업은 그 규모나 역할 면에서 금융부문을 대표하고 있으므로 은행산업의 효율성 제고는 금융구조조정의 가장 핵심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은행의 소유와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을 바꾸는 은행법 개정에 대한 논란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번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명했던 이유도 그 중요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은행법의 개정골자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민영화를 통한 은행산업의 효율적인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과거 우리 은행산업의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우리 은행산업은 과다한 정부의 규제로 인한 자율성의 결여와 이로 인한 유인문제로 인하여 경영의 효율화가 저하되었고 공공성의 제고를 위한 감독기능의 미비는 이러한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금융산업, 특히 은행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새겨보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발달된 금융산업, 특히 은행산업의 육성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는데 꼭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 투자자금을 원활히 동원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있어 금융산업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 투철한 기업가 정신아래 유능한 조직원들이 자율적인 결정을 하고 이들을 열심히 일하게 하는 보상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은행의 경우는 이와 정 반대의 경우였다. 경영의 자율성이 공공성의 제고라는 이름으로 크게 제한되었고 그 결과 경영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화와 연관되어 대주주의 소유한도와 대주주에 대한 여신한도를 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민영화된 은행들이 앞으로는 새로운 환경에서 맡은 바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 이러한 환경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은행의 자율적인 경영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우리 은행의 미래는 없다. 은행도 사기업인 이상 경영을 책임 맡은 사람이 최적의 의사결정을 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경쟁력 있는 최고 경영자가 뽑히고 이 경영자가 자율적인 경영을 펼쳐 나갈 때 우리 은행산업의 경쟁력도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금융기관의 임원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규제당국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정부가 대주주이니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다. 은행이 정부소유가 된 것은 당분간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대리해서 은행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국민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라는 뜻이지 정부가 주주로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둘째, 은행을 포함한 금융산업의 특징은 다른 산업보다도 훌륭한 인재에 조직의 운명이 걸려있는 것이다. 즉 은행의 경쟁력은 그 은행에 종사하는 분들의 경쟁력의 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재를 채용, 교육, 육성하는데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간의 금융환경 하에서는 이러한 결정이 가능하지 않았다. 좋은 인력이 은행에 유입되도록 과감한 보상체계를 도입하고 개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수행하여야 하며 경쟁을 통하여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극대화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인력관리를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아직도 나이에 따라 인력구조조정을 하는 많은 금융기관들을 볼 때 은행의 진정한 발전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진외국의 경우 나이 순에 따라 해고를 한다는 예를 들어본 적이 없다. 몇 십 년에 걸쳐 투자된 인력이 나이에 따라 정리된다는 것은 아무리 경영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어렵다. 이러한 발상이 바로 은행을 현 위치에 가져온 원인이라고 본다.
 셋째, 과감한 규제당국의 변신이 요구된다. 한 나라의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름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 나라의 규제당국의 수준을 볼 수도 있다. 금융기관의 영업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공공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금융기관의 기업성을 너무 무시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공공성과 기업성의 조화가 힘든 과제인 만큼 규제당국도 이러한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 금융기관의 최대 현안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재가 규제당국에 많이 포진될수록 효율적인 규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경우 경험과 능력을 겸비한 많은 인재가 구조조정을 이유로 낭비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경영을 이해하는 사람이 금융기관을 감시하는 위치에 있을 때 보다 효율적인 규제가 가능하리라 본다.
 지금까지는 공공성의 논리 하에 은행의 자율성이 지나치게 제약을 받아왔다. 이제 은행을 사기업으로 보고 사기업으로서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불필요한 제약을 과감히 청산할 때가 되었다. 한가지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은행을 포함한 금융산업의 공공성 유지는 금융기관들이 사기업으로서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선우석호(홍익대)
 
재벌이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니, 은행 민영화에 붙여...
 
 은행 민영화하면 사회주의를 상당부분 받아들인 프랑스에서나 논의될 법한 주제로 보인다. 왜냐하면 은행업이란 누가 보아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소유분산/정부지배 구조하의 은행들이 IMF 이후 은행 구조조정과정에서 정부소유/정부지배로 바뀌면서 민영화란 은행 구조조정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이뤄져야 할 상황이다. 은행업이란 특성을 고려할 때 민영화 자체를 반대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01년 정기 국회에 제출된 은행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 국회에서도 처리되기 어렵게 되었다. 그 이유는 정부가 제 값 받고 팔려니 현실적으로 재벌의 참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를 근거로 산업자본에게 10%까지 은행소유를 허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재벌로 대변되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력 확대를 적극적으로 반대해 온 인사들은 소유권 확대를 제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반면 개정안에는 산업자본에게 10%까지의 소유를 허용하되 4%이상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산업자본의 금융소유를 허용하자는 측은 특정인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위헌으로 보고 있다. 작년 수 차례에 걸쳐 공청회와 학계의 논의가 있었으나 양측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20년간 질질 끌어왔던 은행의 소유와 지배구조에 대한 제도정비가 국회에서 또 다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를 결정하는 데에는 정책적으로 몇 가지 체크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는 추진 일정시기이다. 둘째는 민영화 후 경쟁상황과 가격, 서비스의 질에 대한 고려 사항이다. 셋째는 헐값 매각 가능성을 없애고 제값을 받기 위한 조치이다. 넷째는 외국인, 재벌 등 특정세력에 의한 금융지배가 가능한가를 평가하는 일이다. 아울러 새로운 소유구조로 인해 산업의 위험이 금융위험으로 번지는 시스템적 위험이 증가하는가 이다. 마지막으로 민영화를 통해 국가적으로 경제여건 보완이 일어나는가를 평가하는 일이다. 예로 은행매각으로 재정여건이 크게 개선되느냐, 외환보유증가로 국가신용이 향상되느냐 또는 해외매각으로 금융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는가 등이다. 민영화 정책은 이러한 요소들이 균형 있게 조율되면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감독체계의 보완을 전제로 모든 금융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민영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본인은 우선 금융산업을 타 산업과 구별하여 진입, 퇴출, 소유구조, 지배구조, 자산운용 등 전 분야를 positive system에 의해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도 여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장사다.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 다음은 시장과 감독당국의 몫이다. 다만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모럴해저드가 쉽게 일어날 수 있고 금융의 전염효과에 의한 시스템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특수성은 고려해야 한다. 이런 특수성만을 관리 감독할 수 있다면 일반 산업과 마찬가지로 negative system에 의해 사후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산업을 낙후산업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게 하는 주 요인은 규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금융감독체계는 미비한 채로 놔둔 채 금융산업에 관심 있는 경제주체들이 아예 진입하지도 못하게 하는 사전규제라 본다. 은행주식보유에 대한 내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역차별, 사외이사 선임제도에 있어 국민 등 7개 전국은행에 대한 예외적용조치 등은 규제의 난맥상을 보여준다. 은행소유구조에 관한 국제기준도 은행주식보유에 제한이 없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멀다.
 만일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들에게 은행업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게 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첫째, 산업위험이 은행위험으로 확산되는 시스템위기를 우려할 수 있다. 특히 대주주가 부도상황에 직면할 때 은행자금을 불법으로 전용하여 개별 기업의 위험을 은행산업의 결제시스템 위험으로 전이시키는 문제를 들 수 있다. 이의 관리는 감독기관의 몫이다. 일본의 경우 금융당국은 주요주주 등에 대해 수시로 보고를 받고 및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있는데 주요주주로서 부적격자로 인정되면 인가를 취소하고 주식 등의 처분조치를 발동한다. 또한 은행경영이 악화될 경우 50%초과 보유의 대주주에 대해 은행의 건전성 확보 위한 조치를 요구한다. 일본과 같은 제도의 도입과 더불어 자산운용 및 자본 적정성 규제로 이와 같은 시스템위기는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둘째로 은행이 대주주경영자의 사금고로 전락할까? 특수관계자나 계열사에 대한 여신규제, 공정거래법, 증권거래법, 집단소송제를 비롯하여 주주의 이사회참여와 위임장경쟁을 포함한 시장의 감시로 상당 분의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더하여 감독당국이 중지명령 등의 감독제재조치를 할 수 있는 행정처분권한과 손해배상을 위한 민사소송?형사소송 제기 권한을 가지며, 자산운용 및 자본 적정성 규제를 철저히 하면서 과징금의 부과대상과 금액을 대폭 확대한다면 대부분의 문제를 제거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한국도 20세기 유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10% 소유규제에, 산업자본에게는 4%의 의결권만을 준다는 전 근대적인 발상이 남아있는 한 금융발전은 없다. 100%소유면 어떤가? 금융감독체계를 강화하고 이사회와 같은 내부통제기구를 활성화하면서 집단소송제와 같은 법 체계를 완비할 경우 재벌이 금융산업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규제혁파로 시장이 꿈틀대는 새로운 금융시대를 열자!
 
 
이인실(한국경제연구원)
 
은행 민영화
 
 국민의 정부 개혁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해인 금년에 금융구조조정 마무리 차원에서 은행 민영화가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는 지난 1월 공적자금 투입은행인 조흥은행과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정부지분을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까지 각각 50% 미만으로 축소하는 등 앞으로 3～4년 안에 민영화를 마치겠다는 방안을 확정했다. 국민의 따가운 질책과 정치권의 압력 때문에 정부로서는 공적자금의 회수를 서두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최근 은행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여전히 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하기엔 역부족이다. 더욱이 지나치게 공적자금 회수에 집착하다 보니 민영화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은행의 책임경영체제정착과 경영 투명성 제고, 지배구조의 개선 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은행법 개정안 국회통과 여부와 더불어 은행 매각을 해외, 국내 산업자본 등 누구에게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더 큰 논란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막는 범위 내에서 은행 지분의 동일인 소유 한도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정책방향을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의 은행소유문제가 재벌이라는 국내적 특수성을 감안, 경제력 집중 및 사금고화 문제와 더불어 논의가 되면서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계의 해묵은 논제인 은행소유한도 확대문제에 대해 일부 학계에서는 기존의 은행의 주인 찾아주기?와는 다르나 결국 재벌의 은행소유 나아가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를 낳을 것이 뻔하다며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개인이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은행주식을 소유하고자 할 때는 높은 투자수익을 올리거나 은행지분을 보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다양한 부수이익을 겨냥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아무리 규제와 벽을 둔다 해도 기업이 일단 은행 지분을 소유하게 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금고화 하려는 움직임을 막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바뀐 금융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은 생각이다. 우선 우리나라 은행의 대부분이 외국인의 소유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소유와 경영이 같이 갈 수밖에 없다면 우리나라의 유수은행들은 이미 외국인이 경영을 하고 있어야 했다.
 법과 규정을 통해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지 못한다면 4%의 현 소유제한도 의미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지배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재벌의 지배구조와 경영관행을 감안하면 은행이 재벌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재벌의 사금고화문제는 소유집중을 배제하더라도 대출집중이 있으면 언제나 생길 수 있는 문제이다. 금융시장을 불안으로 몰아넣었던 대우그룹의 유동성 문제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재벌의 은행소유로 인해 은행의 사금고화는 우리나라와 같은 특수환경 하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금고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동일인 여신한도나 경영진간의 상호연계를 제한해서 막아야 한다. 결국 은행주주의 역할이 제대로 적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력 집중이나 은행의 사금고화를 우려하여 재벌의 은행소유를 무조건 막는 것은 이론적 근거도 분명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은행 경영에 대한 주주의 견제∙감시기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 소유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현재의 법 테두리 하에서 국내 시중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대상은 궁극적으로 외국자본이 유일하다. 국내 산업자본은 은행 소유한도 제한으로 인해 참여가 봉쇄되어 있고 여타 개인들은 은행을 소유할 만큼 자본축적이 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제조업과 비은행 금융기관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일부 산업자본의 경우 제조업 지분을 정리하면 지주회사 형태로 참여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도 시중은행의 1대주주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국내 금융자본의 해외자본 잠식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금융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산업자본의 참여시 동일인 여신한도를 낮추는 등의 조치와 함께 감독을 강화하여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에 따른 사금고화를 방지하는 방안을 짜내는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은행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책임경영을 위한 경영자율화를 적극 추진하고 개별 금융기관들이 기관의 능력이나 시장여건에 따라 대형화나 전문화 등을 선택하여 나감으로써 경쟁력을 가져나가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건호(조흥은행)
 
은행 소유구조 논쟁과 민영화
 
 금융구조조정의 마무리를 위해 국유화된 은행의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직 별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최근 은행법 개정 움직임과 관련하여 논란이 분분하지만 소유제한의 완화를 둘러싼 공방만이 부각될 뿐이다. 정부가 소유제한의 완화를 추진하는 배경이 은행의 민영화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현실에서 은행 민영화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민영화의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정부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장내에서 매각할 수도 있고, 특정한 상대방에게 블록세일의 형태로 넘겨줄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정부보유주식의 장내유입으로 인한 가격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선뜻 시행하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 국내에서는 4%의 소유제한으로 인해 매각대상을 찾기 힘들며, 해외자본에 대한 매각은 제일 및 서울은행의 경우에서 보듯이 정부가 헐값매각에 관한 상당한 비난을 감수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성사 가능성을 높이 보기 어렵다. 결국 가장 손쉬운 방법은 법개정을 통해 소유제한을 완화함으로써 자금력을 가진 국내의 산업자본에게 정부지분을 매각하는 것이란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둘째로 생각해볼 것은 민영화의 목적, 즉 정부가 민영화를 통해 달성하려는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일반적인 공기업 민영화와는 달리 은행의 민영화는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보다 관치금융의 청산이라는 측면이 크게 부각된다. 민영화는 관치금융 청산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관치금융은 소유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의 청산은 정부가 정책기능의 수행을 위해 상업기관인 은행의 경제성을 침해하는 것을 감시하고 제지할 수 있는 견제장치의 확립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권력이란 그 속성상 감시와 처벌이 전제되지 않고는 견제가 불가능하다. 금융정책을 수행하는 기구와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기구를 엄격히 분리하여 상호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확립하는 것이 민영화를 통한 관치금융 청산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지금처럼 금융감독기구가 실질적으로 정책수행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셋째로 민영화의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후유증이 지배주주에 의한 은행의 사금고화일 것이다. 지분 소유의 제한은 지배주주의 출현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사금고화를 방지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배주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은행에 대한 정부의 감독기능이 적절히 수행된다면 사금고화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유독 은행에 대해 소유제한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이 동원되는 이유는 감독기능이 지배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견제하는 데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한편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영화의 후유증은 은행 지배구조의 혼란이다. 지분의 분산이 일반화된 선진 외국의 사례와 달리 국내은행의 경우 지배주주의 부재 자체가 정부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진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유제한이 지속된다면 민영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은행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은행의 소유제한을 4%에서 10%로 확대하는 것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이런 정도의 소유제한 완화로는 사금고화의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시중은행의 소유한도가 8%이었던 시절을 이미 겪어 보았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당시에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여 불공정 행위를 하고 은행 경영을 부실화시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15%의 소유가 허용된 지방은행에서조차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지는 않았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이제 10%로 소유제한을 완화한다고 해서 갑자기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여 경제를 분탕질 칠 것이라는 주장은 도대체 재벌 자체에 대한 감정적인 불신이 이외에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궁금하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소유제한의 완화가 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작 지금 시점에 연구가 필요한 것은 소유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은행 및 주주, 정부에 대한 감시 및 견제장치의 강화이다. 관치금융의 청산은 정부의 경영간섭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의해 달성될 수 있으며, 사금고화의 문제는 감독당국에 의한 은행경영 및 주주관계에 대한 감시 및 감독의 강화로 상당부분 방지할 수 있다. 적어도 이런 측면에 있어서는 과거 수년간 소유구조의 완화와 병행하여 은행경영진 및 주주에 대한 감시와 감독의 강화를 추진해온 정부측이 일방적으로 소유제한의 완화에 대한 반대에만 집착해온 사람들보다 문제의 본질에 근접해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물론 현재까지의 정부의 노력이 충분한 것은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부 자신에 대한 견제장치의 마련에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의 부당한 경영간섭이나 인적, 정치적 관계에 기초한 인사개입에 대해 명시적인 금지 및 처벌규정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정부 스스로 관치금융의 오명을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것이다. 감독기능의 강화와 더불어 감독당국의 자기절제가 신뢰할 수준으로 확립될 수 있다면 더 이상 은행의 소유제한이 몇 퍼센트로 결정되는 것이 타당한가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로 사회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이제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역량 또한 금융정책 및 감독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강화에 집중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한상일(한국금융연구원)
 
은행법 개정 및 은행 민영화의 방향
 
 은행의 소유구조 개선방안은 최근 수년간 많은 논의를 거듭하였으나 아직껏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했던 오래된 현안이다.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은행주에 대한 보유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산업자본의 은행지배에 따른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 병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재벌이 은행을 지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가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경영성과에 민감한 주주군의 은행경영에 대한 압력이 낮아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형성을 막는 한가지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소유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는 현행 은행법의 개정을 통해 다양하고 건전한 주주군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되 대주주에 의한 전횡을 방지하여 책임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이 함께 제시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는 사전적 소유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은행경영에 책임을 지는 다양한 주주를 유도하기 위해 일반인에 대해서는 현행 4% 소유한도를 10%로 하고 산업자본에 대해 10%까지 소유를 허용하되 산업과 은행간의 분리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4%초과분에 대해서는 금융주력자가 아니면 의결권 포기각서를 제출한 후 4% 초과소유를 허용하는 개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더라도 미흡한 금융감독 수준과 당국의 금융감독 의지부족 아래에서 은행법 개정안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만을 불러올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책임경영은 지배구조만을 개선 함으로써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부 학자 및 경제인 단체는 일반인 및 산업자본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고 더 나아가 산업의 은행지배를 허용함으로써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것을 주장한다.
 외환위기 이후 상법에 사실상 이사제도가 도입되어서 대주주에 대한 사전적 책임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은행업은 타산업과 다르게 예금보장제도에 의해 보호되고 있으며 높은 부채비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은행을 소유하는 대주주의 손실한도는 제한되는 반면 이득에는 한도가 없으므로 대주주는 본질적으로 고위험을 선호하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할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고 결제 및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은행은 타산업과 달리 추가로 강한 금융규제를 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은행과 산업을 분리하고 대주주관련 책임 및 벌칙조항을 강화함으로써 이러한 문제가 완화되고 있으며, 독일은 대규모 은행을 육성하고 은행의 산업지배를 허용하되 감독당국의 자유재량범위를 확대함으로써 부작용을 완화하고 있다. 소규모 개방 경제로서의 특색을 띠고 소수 재벌에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한 것으로 평가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독일식의 금융시스템의 효율적 작동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은행법 개정은 미국과 유사하게 대주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되 동시에 산업과 은행을 분리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소유제한을 보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주주의 책임이 강화되어 있는 상황 하에서 은행의 소유규제는 은행산업의 본질에서 기인하는 감독규정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소유에 대한 사전적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뛰어난 경영능력을 갖는 자본가를 유인할 수 있고 이들이 금융산업의 역동성을 배양함으로써 은행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은행 및 산업의 분리원칙을 무조건 고집하는 것보다 다른 한편으로 은행산업의 다양성 및 역동성을 도모함으로써 은행산업의 외부충격에 대한 내성 및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전환중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은행 및 산업의 분리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함으로써 경제구조변화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은행 및 산업의 분리원칙을 완화하여 적용되는 전환중의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대주주 등에 대한 여신을 크게 제한하고 대주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산업과 은행의 결합에 의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은행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은행의 책임경영은 소유구조를 변경하지 않고 지배구조만을 개선함으로써 어느 정도 유도될 수 있으나 임직원 및 소유자간의 이해관계가 매우 첨예한 우리나라의 경우 지배구조만의 개선은 한계가 있을 것이며 정부소유 은행의 민영화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업은행의 효율성제고는 제한될 것이다. 따라서 소유구조 및 지배구조의 개선을 동시에 도모함으로써 책임경영이 구현되는 은행으로 정부소유 은행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최근 주식시장의 호황과 은행 수익성의 제고 등으로 은행의 PBR이 1이상으로 상당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은행의 수익성 제고는 은행 자체의 생산성 증가에도 있지만 경제환경 변화에도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수익성 제고에 따른 성과를 공평히 분배하기 위해 정부는 은행주를 서둘러서 매각하는 것보다는 소유 및 감독제도 정비, 정부의 퇴출전략 및 주간사 선정 등과 같은 구체적인 매각방안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