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포럼 제14호

부회장 인사 - 재무학을 전공하는 즐거움과 괴로움

김태혁(부산대)

 재무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2년이 시작 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월 하순을 맞이하고 있으니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실감하는 계절입니다. 회원 제위께서는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발전을 위하여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고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다른 대학 재무전공 교수와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가 머리에 각인되어 회원 여러분께 전해드리려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요약하면 재무, 금융이라는 너무 어려운 전공을 선택하였고, 학계에서 명석한 학자들이 너무 많아 전공으로 빛을 보기가 여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을 다른 분들도 똑 같은 강도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습니다. 주변에 경제학, 무역학, 사회학, 국문학 등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분들을 보면 여유롭고 편안하게 보이는데, 재무학을 전공하는 분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힘들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재무학을 전공하는 분들이 엄살이 심하다고 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면 재무학의 어려움은 재무학이 기업재무관리 뿐만 아니라 증권, 파생상품, 금융기관경영, 국제금융 등의 분야를 모두 다루고 있어 그 영역이 넓기도 하지만 그 어느 한 분야도 정태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으니 여러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분야라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기가 여간 힘이 들지 않은 특성 때문에 기인한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주 대상으로 하는 주가의 예측 불허성과 과도한 변동성뿐만 아니라,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선물, 옵션의 가격변동을 지켜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의 행태가 fashion & fads 상태라면, 요란함과 변덕성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여겨집니다. 더구나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배척하고 역동적인 재무학을 전공하겠다고 선택한, 지적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일당백의 용기로 충만한 학자들이 기라성처럼 모인 학회에서 새로운 발견을 공표하고, 인정받고자 하면 새까만 머리 반백이 되고 빽빽하던 머리 숲 뭉텅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짐은 지나친 자기연민일까요? 그 뿐이겠습니까?
 증권, 선물강연 특강이나 초청강연을 마치고 나오면 반드시 한 두 사람이 따라나와 교수님은 투자로 얼마로 버셨느냐고 묻거나, 앞으로 장세를 어떻게 예측하시느냐고 물을 때, 친구들이 종목을 추천해달라고 요구할 때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 자괴감까지 부가되면 재무학이란 정말 이론적, 실천적으로 제대로 하기 힘든 학문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투자로 얼마를 벌었느냐고 묻는데 시장은 효율적이므로 지수가 폭락한 마당에서 시장평균손실보다 약간 덜 손해를 입었기에 성과 좋은 편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공감하실 것입니다. 수업 중에는 분산투자, 리스크관리, 스프레딩, 아비트라지를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실투에 임하면 차익거래 수익률은 가슴의 반에 반도 차지 않고 임전무퇴정신으로 몰빵 주식투자 내지 대박을 꿈꾸는 완전히 발가벗은 옵션포지션 등에 따른 재무전공 학자의 과도한 실험실습비 또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다른 전공은 실험실습비를 징수하여 비용처리도 한다는데 우리는 그 냉엄한 자본시장을 대상으로 실습을 하려면 만만찮게 바쳐야하니 불공정거래가 따로 없는 듯 합니다.
 관광경영학과 교수들은 전국의 명승지를 다니며 고급 호텔에서 대우받으면서 호사스럽게 지내는데, 수산경영학과 교수들은 태풍이 휩쓸고 간 어장에 피해규모를 추정하는데 정부에서 수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 받는데, 우리는 학진에서 기백만원 지원 받아, 대부분을 연구 보조원에 자동이체하고 연구 결과물을 학회지에 발표하려면 사명감에 불타 오르는 젊은 교수들의 서릿발같은 비평을 받으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손질한 논문을 두 세 차례 씩 수정을 거듭하여야 겨우 학회지에 게재하는 고통도 잘 아실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은 동전의 양면을 보는 것과 같아서 비관적인 관점에서는 위의 글처럼 재무학을 전공하는 것은 골치 아프고 힘든 길을 가는 여정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낙관적인 관점에서는 자랑거리도 많아 보입니다. 우선 자본주의의 꽃인 금융시장을 대상으로 연구, 강의하는 기쁨이겠습니다. 우리는 경제학, 통계학, 심리학 등의 교수들과 그들의 전공을 대상으로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지만, 그들은 재무학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 보이지 않아 상대적인 우월감을 지닐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수강 선호 과목을 보면 단연 재무관련 과목이 상위를 점하고 있어 우쭐해집니다. 일반인들의 최대의 관심사인 재테크분야에 대하여 이론과 실천적인 면을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어 좋습니다. 또한 어려운 학문을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언제나 의문을 품고 사색하며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이야말로 조금 과장하면 구도자의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껏 역동적인 금융자산시장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이 탄생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에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우리들은 재무학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