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회장 인사

존경하는 학회 회원 여러분,

바쁜 연말연시를 잘 보내고 계신지요? 오늘은 제가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국내기업의 기업지배구조에 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약 2년반 전부터 한국기업 지배구조원의 원장직을 비상근으로 맡은 바 있습니다. 동 연구원은 2002년 정광선 교수님의 주도로 출범하여 기업지배구조, 사회책임 및 환경경영평가, 그리고 기관투자자주주들의 의결권행사를 지원하는 업무까지 영역이 확대된 상태입니다.

연구원은 업무상 국내기업지배구조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고 이를 기초로 금융위원회나 감독원, 법무무, 공적연기금 등의 정책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펀드고객에 대한 신의성실의무에 반하여 소유관계 또는 사업관계상 투자기업의 주주총회에서 거의 무조건 찬성을 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스튜어드쉽코드(가칭 기관투자자자의 관리의무 모범규준)의 도입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오늘은 제가 이해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의 주요한 특징으로서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경영권의 가족승계 현상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국내기업 지배구조의 주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다른 국가에 비해 가족경영기업의 비중이 높고 특히 가족이 대부분 회사경영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국내상장기업의 약 95%가 가족경영기업으로 이해되는 반면 영국이 약 10%, 캐나다 25%, 미국이 30% 내외입니다. (OECD Fact Book(2015)). 반면에 유럽대륙국가의 상장기업은 평균 약 70%, 동남아 국가 중에는 홍콩의 경우 75% 정도가 가족경영행태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가족경영과 전문가경영 중 어떤 경영행태가 더 나은 가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구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법제도환경, 정부의 역할, 조직과 가족문화의 특성, 금융시장의 행태등이 기업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추가하여 국내에서는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얻어지는 사적경영혜택(private benefit of control)이 많고 이에 대한 규율은 약하다는 것이 가족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려는 유인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세습경영을 통해 경영자가 되는 것이 지배주주일가에게는 매우 유익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국내의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배주주가족이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여 계열회사와의 거래(related party transaction)를 통해 안정적 수익의 기회를 확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이사의 자기거래(self dealing)의 범위를 매우 폭넓게 해석하여 소위 일감몰아주기가 거의 관찰되지 않는 반면 국내에서는 2014년도의 경우 40대 대규모기업집단에서 지배주주일가가 소유한 비상장회사에서 약 91조원의 매출에 달하는 계열사간 거래가 관찰된 바 있습니다(공정거래위원회). 이에 5%의 매출영업이익률을 곱해보면 매년 4.5조원의 이익을 지배주주일가등이 개인적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일감몰아주기 또는 사회기회편취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은 상장기업의 주주가 가져가야했거나, 지배주주가족과는 상관없는 여타의 사업자들이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기 때문입니다.

 

박 경 서

(고려대 교수)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러한 일감몰아주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3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혜택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하였으나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과거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절대적 기여를 한 바 있는 재벌기업들의 창업과 성장에 있어 지배주주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창업1세대의 능력과 노력을 잘 이어받지 못하는 창업 3, 4세로의 무분별한 경영권세습은 점차 한국경제의 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웨렌버핏은 경영권세습에 관해 "2000년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자제들로 2020년 올림픽팀을 꾸리는 것" 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지배주주로서 회사를 지배하되 굳이 일상적 경영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 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그 과정이 경영능력에 관한 엄격한 검증 없이 다른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초고속승진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편, 지배주주입장에서 자식보다 더 능력있  는 전문경영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CEO가 되는 선택의 기회비용은 회사가치(주  가)의 하락일 것입니다. 만약 무능한 경영으로  회사가 망한다면 결코 무능한 자식에게 경영  권을 승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  여 참고로 국내 30대 대규모기업집단의 가족  지분율합계는 4.2%로 나타납니다.

 자산규모가 클수록 동 수치가 낮아지는 경향  이 있고 일부 재벌은 1%대 불과하기도 합니  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유럽대륙국가의 상장  기업 중 가족경영 기업의 가족지분율이 약  39%에 이르는 것과  극명히 비교됩니다. 즉,  국내 재벌기업의 지배  주주가족은 회사가치  의 하락시 이의 4.2%만을 부담하는 기회비  용을 갖게 됩니다. 소위 현금권(cash flow  right)과 경영권(control right) 간의 괴리도  (disparity)가 클수록 왜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무  분별한 가족승계에서 관찰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전세  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가 바로 한국이고, 이를  가능케 한 것은  피라미드와 순환출자에 의한  소유구조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1999년 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였지만 안타깝  게도 상장 자회사의 경우 지주회사가 불과  20% 이상만 소유해도 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높은 괴  리도의 문제나 일감몰아주기의 문제점은 지속  됩니다. 경제가 고속으로 성장할 수 있던 과거  시대에는  능력 있는 창업가가 적은 지분으로  사업을 확장하도록 허용하는 경제정책이 적절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기업집단에 의한 경제  성장모형이 여러 관점에서 오히려 한국경제의  성장에 리스크요인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들 대규모기업집단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능력있는 경  영자가 최고경영자에 오르는 방법이 모색 되  어야 하고 이를 위해 기업지배구조개선은 중  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창피한 일로 치부되고 엄격한  법기준으로는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일감몰  아주기를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  도 그 한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중지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