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경제를 발전시켜온 데에 금융자본주의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금융자본주의의 효과성은 "신뢰는 사회적 자산" 이라는 명언처럼 신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8년 미국 sub-prime mortgage 사태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Piketty는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분석· 제기하여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Finance 분야에서도 “과연 Finance가 사회에 유익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도록 하였으며,
이 문제의식은 이탈리아 출신의 Zingales 교수가 2015년 AFA에서 행한 학회장 연설 “Does
Finance Benefit Society?”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Finance는 개인차원에서 저축·투자와 차입 등의 의사결정,
기업차원에서 사업타당성 분석을 통한 합리적 투자와 이 투자에 대한 재원조달, 그리고 국가차원에서 채무관리에 관련된 문제 등을 탐구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근본으로 모든 경제 주체의 복지증진을 위한,
좋은 사회를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 Finance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런데 Finance가 경제적 불균형 문제를 심화시키며 경제혁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Occupy Wall Street"으로 대변되는 반금융정서가 불평등과 부정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다큐영화 Inside Job(2010)에서는 ‘금융산업이 경제학 학문을 부패시켰다’고 합니다.
모든 제도와 조직은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해야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Finance도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하여야 할 필요가 증대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존경받는 공정한 사회 시스템이 정당성을 확보함은 물론 효율성도 증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해결의 첫 단계는 명확한 문제인식이기에 우리나라 Finance 분야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우리 학회가 해결책을 강구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나열해봅니다.
먼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와 그와 관련된 Economic Entrenchment 문제입니다.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기준 세계 부호 상위 400명을 부의 원천에 따라 분류했을 때 65%인 259명은 자수성가(self-made),
나머지 141명(35%)은 상속(inherited)으로 집계됐다.
400위 안에 든 한국 부호 5명 모두 상속자였다(연합뉴스 2016.1.4).” 한마디로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에는 역동성이 부족하여서 부자되는 것이 상속으로는 가능하지만 자기의 노력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기존 기득권을 가진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신규 기업에 불리하며 신용창조에 의한 슘페터적인 창조적 파괴가 어려운 반시장적 crony capitalism적 요소가 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존 기업에 유리한 친기업(pro-business)가 아니라 신규기업도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는 친시장(pro-market)적인 경쟁활성화 정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업 지배구조관련 내용입니다. 일감몰아주기, 세습경영 등으로 대표되는 불공정성
문제는 일반 소액주주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지배주주의 전횡이 가능한 후진적 소유·지배구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을 것입니다.
후진적 지배구조 문제는 기업차원에서 CEO 리스크 문제를 야기하며,
이에 추가하여 소수의 대규모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는 국가차원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국가차원의 위험관리를 고려할 때 소수의 재벌에 의존하는 경제체제를
탈피하여 국가차원의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배구조 문제는 영리기업만이 아니라,
대학, 언론,
병원, 시민단체 등의 비영리 조직에서도 중요하며 이에 대한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부채문제입니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국가부채의 세 가지 차원의 문제입니다. 가계부채는 과다한 이자지급에 따르는 가처분 소득의 감소로 거시적인 소비부족 문제 초래하는 것은 물론,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채권추심과 관련된 인간적 비참함의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기업부채 문제는 좀비기업의 문제와 구조조정의 지연에 따른 성장동력 저해문제를 야기합니다. 국가부채는 국가의 재정건전성 문제와 복지 재원의 부족문제를
야기합니다. 부채는 근본적으로 유한책임과 이자의 비용인정에 따르는 부채의 세금절감효과 때문에 과다 부채사용과 도덕적 해이문제를 야기합니다.
문제해결에는 사회제도 차원에서 채권자의 재산권과 채무자의 권리간의 적절한 균형을 재검토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과학적인 연구에 의하여 해법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며 여기에 학자와 학회의 역할이 있습니다. 철학자 Hannah Arendt가 “Eichmann in Jerusalem”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한 무사유’가 엄청난 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전공으로 하고 있는 Finance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하여 진정으로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말로 해석합니다. Finance에 의하여 삶이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이에 근거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도움될 연구를 하는 것이 우리 학자의 사회적 사명의 하나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에는 기자·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 사회의
문제점을 알려주는 탐사보도는 학자가 사회문제를 파악하는 데에 필수적입니다.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작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훌륭한 작가의 작품은 문제 파악과 해결을 위한 노력 그리고 해법의 수용성 증진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입니다.
사회계획가적인 종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과학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문제해결책을 제시하여야 하는 것이 학회와 학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전 구성원의 복지에 적절한 가중치를 가진 사회효용함수를 생각하는 사회계획가(social
planner)의 시각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독선적인 주장이 아니라 이론과 경험적 증거에 근거한 과학적 방법을 활용하여야 합니다. “사랑과 공감의 뜨거운 가슴과 과학적 방법의 차가운 머리”가 필요합니다. 이점에서 학자의 Integrity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윤리는 어느 정도 정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학자가 전문가로서 공적 활동에 관한 윤리강령입니다. 각종 공적 위원회에서 자문·심의와 법정 등에서 전문가 증언 등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전문가의 공적활동에 관한 윤리강령’을 마련하여 학자가 권력과 재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불편부당한 입장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학자와 학회가 과학정신을 추구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연구결과가 틀릴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falsifiability) 자기 의견(연구결과)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여러 학자의 검토와 반론을 받아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과학정신의 핵심이며 학자의 자세일 것입니다. 물론 ‘지식의
존재구속성’과 ‘관찰의 이론 적재성’ 등 인식론적·과학철학적 난제가 있음에도 “"과학자는 믿는 내용이 아니라 믿는 근거가 보통사람과 다르다.”는 Bertrand Russell경의 명언이 과학정신을
잘 표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사회는 좋은 정책이 밑받침이 되며, 좋은 정책은 정확한 사실파악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장의
차이에 따라 사실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는 것이 현실인지라 객관적인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처럼 비관적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록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더라도, 각각의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 부분적 실체파악을 통합하여 총체적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또한 이 것이 제가 학회장을 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비록 입장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다른 관점을 이해하려는 배려와 용기를 가지고 공적 토론의 장에서 정보공유를 하게 되면, 사실파악과 문제해결 방안의 탐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공리주의 윤리관을 채택하고 있으나, 공리주의의 단점인 다수에 의한 소수의 권익 침해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맹점을 칸트의 의무론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소수·약자에 대한 공감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는 이유이며, 이러한 생각을 학회를 통하여 전파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구와 정책에 의견의 차이가 있을 것이며, 이것이 세상의 근본적인 어려움의 하나일 것입니다. 의견의
차이를 해소하는 데에 중요한 것은 열린정신과 합리성의 구현은 과학정신에 기반한 소통일 것입니다. 불편한 내용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의식적, 무의식적 상황을 초래하는 filter bubble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학회가 공감과 과학정신에 근거한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6. 6. 30
한국재무학회 회장 양 채 열
<참고>
Morck, Randall, Daniel Wolfenzon and Bernard Yeung. 2005. "Corporate Governance, Economic Entrenchment,
and Growth."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43(3): 655-720.
Zingales, Does finance benefit society? (2015) http://faculty.chicagobooth.edu/luigi.zingales/papers/research/Finance.pdf
Zingales, Preventing Economists’ Capture (2013)http://faculty.chicagobooth.edu/luigi.zingales/papers/research/Preventing_Economists_Capture.pdf
Eli Pariser(2011), Beware online "filter bubbles" Ted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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